물가는 고공 행진, 이것만 반값?
전선규 (3q21@donga.com) 기자
2023-10-31 13:02:13
킹크랩·소고기·꽃게 값이 저렴해진 이유
날로 고공 행진(어떤 수치가 계속 오르는 현상)하는 물가로 인해 장 보기가 두려운 요즘이에요. 그런데, 비싼 몸값을 자랑하던 킹크랩, 소고기와 같은 품목의 가격이 되레 저렴해지고 있어 눈길을 끌어요. ‘월급 빼고 다 오른다’는 고물가 시대, 물가를 거스르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전쟁 여파로 발길 돌린 러시아산 킹크랩
최근 시장과 마트 수산물 코너가 ‘킹크랩’을 찾는 소비자들로 붐비고 있어요. 고급 수산물인 킹크랩이 불티나게 팔리는 이유는, 러시아산 킹크랩 가격이 크게 떨어졌기 때문! 수산물 플랫폼 인어교주해적단에 따르면 올해 평균 1㎏ 당 12만 원 안팎에 거래되던 킹크랩 가격이 지난 9월 중순을 기점으로 6∼7만 원대까지 내려갔어요. 거의 ‘반값’이나 다름없지요.
비싼 몸값을 자랑하던 킹크랩 값이 떨어진 이유는 국제 정세(일이 되어 가는 사정이나 형편)에서 찾을 수 있어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해 미국과 유럽이 무역(나라와 나라 사이에 물건을 사고팜) 제재(제한하거나 금지함) 조치를 취했기 때문. 최근 수년간 러시아에서 잡은 게의 50% 이상이 유럽과 미국으로 수출됐지만, 수출길이 막히면서 올해 어획량(잡거나 딴 수산물의 총량)의 대부분이 중국과 한국, 일본 등 아시아 국가로 향하고 있어요.
게다가 중국에선 경기 침체(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못하고 제자리에 머묾)로 인해 킹크랩 수요가 많이 감소했지요. 살아있는 상태로 유통되는 킹크랩의 재고 소진은 시간 싸움! 전문가들은 물량 상당수가 한국으로 발길을 돌리며 가격이 내려간 것으로 분석했어요. 한편 올해 러시아산 킹크랩 생산량이 늘어날 것으로 예측되면서 유통업계는 킹크랩의 낮은 가격이 연말까지 유지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어요.
소에게 먹일 풀이 없어 ‘에구구’
호주에서 소를 기르는 한 농장의 모습으로 메마른 땅이 눈에 띈다. ABC 홈페이지 캡처
가뭄의 영향으로 목초지가 메말라 소들이 먹는 목초의 값이 치솟고 있다
세계 최대 소고기 수출국 중 하나인 호주의 소고기 가격이 9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지고 있어요. 미국 경제전문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호주의 육우(주로 고기를 얻으려고 기르는 소) 가격은 올해 들어 60%가량 떨어졌지요.
원인은 다름 아닌 기후 변화. 기상 당국 통계가 시작된 이래 가장 건조한 해를 보내고 있는 호주. 적도 부근의 바닷물 온도가 올라가는 엘니뇨현상으로 기온은 올라가고 강수량은 줄어 극심한 가뭄에 신음하고 있어요. 목초지(가축의 사료가 되는 풀이 자라는 곳)가 바싹 말라버려 소가 먹을 풀이 부족해진 호주 농가에선 치솟는 목초 값을 감당하지 못해 앞다투어 소를 팔고 있다고.
이 같은 영향으로 우리나라 소고기 수입 점유율(영역,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비율)에도 변화가 일었어요. 호주산 소고기가 수년간 국내 소고기 수입 점유율 1위 자리를 지키던 미국산을 제쳤지요. 다만 호주산 소고기의 저렴한 가격이 국내 소매가격(물건을 소비자에게 직접 팔 때의 가격)에 반영되려면 시간이 필요해요.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재고 소진 및 수입 절차에 따라 연말부터 저렴한 가격이 반영될 것으로 예상돼요.
따뜻해진 바닷물에 꽃게가 ‘풍년’
올해 인천 해역에서 특히 꽃게가 많이 잡혔다. 인천=뉴시스
제철을 맞은 꽃게도 저렴한 가격으로 소비자들을 유혹해요. 올해는 연평도 어장 등 인천 해역에서 특히 꽃게가 많이 잡히고 있어요. 지난달 13일까지 서해에서 잡힌 꽃게의 양은 6672t(톤). 지난해보다 14%가량 증가한 수치지요.
꽃게는 바닷물이 따뜻해지면 활동과 번식이 왕성해진다고 알려져요. 게다가 전남 진도군과 해양수산과학원은 10년 넘게 1억 마리가 넘는 어린 꽃게를 진도 바다에 방류(강이나 바다에 놓아줌)해왔는데요. 예년보다 높았던 서해 수온의 영향과 함께 꽃게 어획량을 늘리기 위한 노력들이 모여 꽃게가 어느 때보다 풍년을 이룬 것. 그 결과, 국내산 꽃게들이 저렴한 가격으로 시장에 유통되고 있어요.
한편 이상기후로 인해 바닷물이 따뜻해지면서 이탈리아에선 꽃게가 너무 많이 잡혀 문제라고. 꽃게 요리가 발달하지 않은 이탈리아에선 파스타에 활용되는 조개를 모조리 잡아먹는 꽃게가 골칫거리로 떠오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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