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 투자분석가 신순규 씨...“내 마음에 귀 기울여보세요”
조윤진 (koala624@donga.com ) 기자
2021-07-25 12:19:00
[미국 월스트리트에서 27년째 투자분석가로 일하는 신순규 씨]
“내 마음이 말하는 소리 이외에는 모두 소음에 불과해요. 때로는 그 소음이 너무 커서 모른 척 하기가 쉽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나를 불안하게 흔드는 시끄러운 소음을 무시하고 진짜 내 마음이 말하는 것에 집중하는 게 중요합니다.”
마음에 귀를 기울이는 것. 세계 금융시장의 중심인 미국 월스트리트에서 27년째 투자분석가로 일하고 있는 신순규 씨(54)가 어려움을 극복해 온 방법이다. 9세 때 시력을 잃어 앞이 보이지 않는 신 씨는 1급 시각장애인이다.
지난 2015년 에세이집 ‘눈 감으면 보이는 것들’을 낸 신 씨. 2019년에는 교양프로그램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에서 ‘시각 장애를 넘어 하버드에서 월스트리트까지’를 주제로 강의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최근 그가 두 번째 에세이집 ‘어둠 속에서 빛나는 것들’을 출간했다. 이 책에는 마음을 휘둘리게 하는 다양한 요인들로부터 우리가 중심을 잡기 위해 필요한 33가지의 가치가 담겼다. 그가 직접 꼽은 가치들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꿈을 가지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어린이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을까. 최근 에세이집 출간을 기념해 한국을 찾은 신 씨를 서울 중구에 있는 한 호텔에서 만났다.
막다른 길? 새로운 꿈의 기회!
[1980년 초등생 시절의 신 씨가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다. 신 씨 제공]
피아니스트, 과학자, 의사, 투자분석가.
연관성이 전혀 없어 보이는 이 직업들은 모두 신 씨가 과거 가졌던 꿈들이다. 9세 때 시력을 잃은 뒤 그가 가진 첫 번째 꿈은 피아니스트였다. 신 씨는 이 꿈을 위해 9년간 피아노 연주에 몰두했지만, 어느 순간부턴가 피아노 연주가 행복하지 않다고 느꼈다.
오랜 시간 준비해온 꿈이 막다른 길을 만났을 때 신 씨가 내린 결론은 남달랐다. 자신의 꿈을 억지로 고집하지 않고 포기한 것. 대신 자신이 더 좋아하는 일을 고민하고 새로운 꿈을 찾았다. 그 과정에서 신 씨의 꿈은 피아니스트에서 과학자, 의사, 다시 투자분석가로 바뀌길 거듭했고 지금은 최초의 시각장애인 투자분석가로서 세계적인 미국의 투자은행인 브라운브라더스해리먼에서 일하고 있다.
“꿈을 포기하는 게 무조건 잘못된 건 아니에요. 단순히 ‘꿈’이라는 이유로 붙잡고 있기보다 자신에게 맞는 새로운 꿈을 찾아나서는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내가 진짜 원하는 건?
[미국 하버드대학교 졸업식에서 신씨와 가족들의 모습]
삶 전체를 아울러 무수한 선택과 포기를 반복해온 신 씨. 갈림길을 마주할 때마다 어떤 생각을 했을까. 신 씨는 “내 마음에 집중했다”고 답했다. △나고 자란 한국을 떠나 15세 때 처음으로 혼자 미국 유학길에 오르기로 결정했을 때 △정신 전문 의사가 되겠다는 생각에 하버드대 심리학과에 진학했을 때 △장애로 인해 의사로서의 업무가 어려울 것이란 판단에 메사추세츠공대(MIT) 경영학, 조직학 박사과정에 진학했을 때. 이 모든 선택의 과정에서 그는 주변의 시선에 영향을 받기보단 자신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소리에 집중했다.
신 씨가 말하는 마음의 소리는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을 뜻한다. ‘그래도 내가 오랫동안 해온 거잖아?’ ‘이런 선택을 하면 부모님이 싫어하진 않으실까’ ‘요즘엔 이 직업이 인기가 많다던데’…. 이런 생각들은 부모님과 선생님 등 주변에 시선에 영향을 받은 것일 뿐 진짜 자신의 마음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니라는 것. 이런 생각을 자신의 마음으로 착각하지 않으려면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이 신 씨의 설명이다.
“하루에 단 몇 분이라도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해요. 방법이 거창할 필욘 없어요. 잠시 산책을 하며 하루를 돌아보거나 일기를 쓰는 것, 명상을 하는 것 모두 좋은 방법입니다.”
네 탓이 아니야!
[미국 월스트리트에서 근무하고 있는 신 씨]
세계 경제와 금융의 중심지인 월스트리트에서 투자분석가로 일하고 있는 신 씨. 그가 하는 일은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는 기업을 판단하고, 선택한 뒤 고객을 대신해 투자하는 일. 매일 다양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직업을 가진 그는 후회 없는 선택만 하고 있을까.
신 씨는 “열심히 고민해 선택해도 후회가 남을 순 있다”면서 “그렇다고 스스로를 탓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과거의 선택이 자양분이 되어 새로운 선택을 하도록 이끌어주기 때문.
중고교 등 상급학교로 진학할 초등생들. 계열, 전공을 선택하는 것을 넘어서 직업을 선택하는 상황도 마주할 것이고, 이후에도 끝없는 선택의 갈림길에 놓이며 위기도 겪을 것이다. 이런 과정을 앞둔 초등생에게 신 씨가 남다른 조언을 건넸다.
“자신이 선택한 결과가 예상과 다르면 자신을 원망하고 깎아내리는 경우가 많지요. 자책하지 마세요. 불행해집니다. 훌훌 털고 일어나 또 다른 선택을 할 힘이 안 생길 수도 있고요. 스스로를 소중하고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믿는다면 아무리 많은 갈림길에 놓여도 두려움 없이 극복할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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