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강국’ 스위스의 크레디트스위스, 비밀 보장 원칙에 발목 잡혔다?
장진희 (cjh0629@donga.com) 기자
2023-03-29 13:28:52
스위스 루체른에 있는 크레디트스위스(CS) 건물 전경. 루체른=신화통신뉴시스
세계 9대의 투자은행(IB)이자 167년의 역사를 가진 스위스의 한 은행이 최근 경쟁업체에 팔렸어요. 크레디트스위스(CS)가 스위스 1위 은행인 스위스연방은행(UBS)에 32억 달러(약 4조1632억 원)에 팔려 충격을 주고 있어요.
CS는 금융업의 강국으로 알려진 스위스를 대표하던 은행 중 하나라 일부 스위스 국민들은 그 몰락에 대해 “스위스의 브랜드 가치(브랜드와 상품에 대해 소비자가 느끼는 가치)를 떨어뜨렸다”고 평가할 정도라고 미국 파이낸셜타임스가 최근 보도했어요.
CS의 몰락은 은행 강국으로 꼽혔던 스위스의 위상을 흔들고 있다는 분석이 나와요. 스위스는 어떻게 은행 강국이 되었고, 굳건하던 은행들은 왜 위기를 마주하게 되었는지 알아보아요.
용병제로 탄탄한 신뢰 쌓아와
중세시대 스위스는 다른 유럽의 나라에 용병을 보내 수입을 올렸어요. 용병은 돈을 주고 고용하는 병사를 말해요. 당시 스위스는 알프스 산맥 같은 척박한 자연환경에 둘러 싸여 농사를 짓기 어려웠고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용병을 보내야만 했지요.
스위스 용병이 자신을 고용한 나라에 어찌나 최선을 다했던지 ‘스위스 용병은 죽어도 계약을 지킨다’는 말이 전해져요. 단 한 번이라도 신뢰와 신용을 잃으면 자식 세대는 영원히 용병을 할 수 없다고 믿었기에 목숨을 걸고 고용주(대가를 주고 다른 사람을 부리는 사람)를 지켰다고 해요.
프랑스혁명(1789∼1799년 프랑스에서 일어난 시민 혁명) 당시 분노한 민중의 공격을 피해 도망치던 프랑스의 국왕 루이 16세를 끝까지 지키다가 모두 숨진 것은 프랑스의 근위대(임금을 가까이서 지키던 부대)가 아닌 스위스 용병들이었다는 유명한 일화도 전해집니다.
고객 신뢰는 스위스 은행의 밑거름
조상들이 쌓은 명성을 바탕으로 스위스는 은행업을 키웠어요. 은행은 고객의 신뢰를 양분(영양이 되는 성분) 삼아 운영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은행이 고객들에게 ‘당신이 열심히 번 돈을 안전하게 맡아줄 수 있는 곳’이라는 인식을 주어야 더 많은 고객을 모으고 성장할 수 있는 것이지요.
스위스 은행은 고객의 정보를 외부에 절대로 알리지 않는 ‘비밀주의’ 원칙을 지켜 신뢰를 쌓아온 것으로 유명해요. 누구든 돈만 가져오면 돈을 어떻게 구했는지 등에 관계없이 계좌를 만들어주는 방식이지요. 고객의 입장에서는 스위스의 은행이라면 얼마든지 신뢰하고 돈을 맡길 수 있는 것.
비밀주의를 바탕으로 스위스의 은행은 몸집을 키워왔어요. 미국의 일간신문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스위스 은행의 자산을 모두 합친 것은 2020년 기준 스위스 국내총생산(GDP·한 나라 안에서 생산된 물건과 제공된 서비스의 가격을 모두 더한 것)의 5배에 달해요.
검은돈 받았다는 의혹, 드러나
철저한 비밀주의를 유지하던 스위스의 은행은 오히려 비밀주의 때문에 최근의 위기를 맞았다는 분석이 나와요. 크레디트스위스에 독재자와 부정부패(바르지 못하고 잘못된 길로 빠짐)한 정치인, 범죄자들이 맡긴 검은돈(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주고받는 돈)이 보관됐다는 사실이 공개된 것. 지난해 2월 미국 일간신문 뉴욕타임스(NYT)와 영국의 가디언을 비롯한 세계 46개 언론사는 “CS의 내부고발자(자신이 속한 조직이 저지른 비리를 공개한 사람)에 따르면 3만 여 명의 범죄자가 CS에 맡긴 돈은 무려 1000억 스위스프랑(약 141조4930억 원)에 달한다”고 보도했어요.
스위스의 은행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누구에게나 계좌를 열어주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확신으로 바뀌며 CS에 대한 고객들의 신뢰는 땅에 떨어졌어요. 일부 고객들의 명단이 공개된 것도 한몫 했지요.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의 영향까지 겹치며 CS의 고객들은 한때 하루 평균 약 100억 달러(약 12조9970억 원)의 돈을 빼냈어요. 계속되는 인출(예금을 찾음)로 유동성(기업의 자산 등을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정도) 위기를 마주한 CS는 결국 UBS에 인수되고 말았지요.
관련기사
-
역대급 인플레이션 겪는 아르헨티나, 최고액 1만페소 지폐 발행
극심한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에 시달리고 있는 남미 나라 아르헨티나가 최고액권 지폐를 새로 내놓았어요. 물가가 오르면 동일한 상품을 구매하기 위해 이전보다 더 많은 돈을 준비해야 해요. 과거 1000원 한 장이면 살 수 있던 치약 하나를 물가가 다섯 배 오르면 1000원 다섯 장이 필요해지는 식이지요. 따라서 물가가 상승하면 이전과 같은 금액으로 구매할 수 있는 물건과 서비스가 줄어들어 화폐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이지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에 따르면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은 “1만페소 지폐 유통을 시작한다”며 “새 지폐가 거래를 용이하게 할 것”이라고 7일(현지시간) 밝혔어요. 이번에 발행하는 1만페소는 기존 아르헨티나의 최고액 지폐였던 2000페소보다 가치가 5배나 높아요. 1만페소는 공식 환율 기준 11달러(약 1만5000원)에 해당해요. 이미 지난해 2월 아르헨티나 당국은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해 기존 최고액권이었던 1000페소보다 2배 높은 금액의 2000페소 화폐를 내놓은 바 있어요. 시중에선 아직 2000페소의 유통도 원활히 이뤄지지 않고 있지만 재차 새로운 최고액 지폐를 발행한 것. 이어 당국은 연말까지 2만페소 화폐도 발행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져요. FT는 아르헨티나에 심각한 경제 위기가 이어지면서 지난 5년간 페소 가치가 95% 폭락했다고 전했어요. 지난 3월 기준 연간 물가 상승률은 287%까지 치솟았지요. 살인적인 고물가로 인해 아르헨티나에선 현재 빵 하나를 사려고 해도 현금을 다발로 들고 다녀야 하는 사정인 것으로 알려져요. 이번 1만페소 발행은 현금 사용에 따른 시민들의 불편을 덜어주기 위함이에요.
2024-05-09 12:42:02 2024-05-09 12:42:41
-
‘한국식 김’ 인기에 김 가격, 처음으로 1만 원 돌파
김밥의 주재료인 마른 김의 도매가격(많은 양의 물건을 한데 묶어서 팔 때의 가격)이 처음으로 1만 원을 넘어섰어요.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수산업관측센터가 발표한 5월 양식관측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달 전국 김밥용 김의 평균 도매가격은 한 속(100장) 당 1만89원으로, 5603원이었던 지난해 4월보다 약 80% 올랐어요. 소비자가격(소비자가 물건을 사들일 때의 가격)도 크게 올랐어요.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마른 김의 소비자가격은 3일 기준 10장당 1261원으로, 1012원이었던 1년 전보다 24.6% 올랐지요. 김 가격 상승은 늘어난 해외 수출 수요(어떤 물건을 사려고 하는 욕구) 때문.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한국식 김밥과 김부각 같은 간식용 김이 해외에서 인기를 끌면서 지난해 우리나라 김 수출액은 1조 원을 돌파했어요. 하지만 늘어난 김 수출은 국내 김 재고 감소로 이어지고 있어요. 수산업관측센터가 추정한 지난달 김 재고량은 4900만 속으로, 지난해 같은 달(6400만 속)보다 4분의 1가량 줄었지요. 이 같은 수요와 공급(물건을 제공함)의 불균형에 김 가격이 오른 것. 마른 김과 함께 밥반찬으로 즐겨 먹는 조미김 가격도 오르는 추세예요. 조미김 제조업체들이 김 제품 가격을 올리고 있거든요. 김 가격이 계속 오르면서 조만간 김밥 가격도 오를 것으로 보여요.
2024-05-08 11:30:00
-
해리포터 초판본 표지 그림 경매 올라… 예상가는 8억원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인 해리포터 시리즈의 1편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초판(서적의 첫 출판물)의 원본 표지 그림이 경매에 나와요. 미국 CNN 방송에 따르면 1997년 출판된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초판본 표지 그림이 오는 6월 뉴욕 소더비 경매에 나올 예정이에요. 예상 낙찰가는 60만 달러(약 8억2000만 원)로, 해리포터 관련 물품 경매가 가운데 역대 최고가를 기록할 것으로 기대를 모아요.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초판본 표지는 삽화가 토머스 테일러가 그린 수채화(물감을 물에 풀어서 그린 그림)예요. 주인공 해리포터가 마법 학교 호그와트로 처음 떠나기 위해 ‘호그와트 익스프레스’ 열차에 탑승하려는 모습이 담겼지요. 갈색 머리에 동그란 안경을 쓴 해리포터의 이마에는 그의 상징인 번개 모양 상처도 그려져 있어요. 당시 23세였던 테일러는 이틀 만에 이 그림을 완성한 것으로 전해져요. 해당 표지는 지난 2001년 런던 소더비 경매에 처음 등장했어요. 당시 예상가의 4배가 넘는 10만6000달러(약 1억4000만 원)에 팔려 화제를 모았지요. 이후 23년 만에 다시 경매에 오른 것. 소더비 측은 “20년 이상 지난 이후에도 초판 표지 그림이 최초 경매가를 넘어설 뿐만 아니라 해리포터 관련 품목 중 최고 가격이 될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어요. 한편 현재까지 해리포터 관련 품목 중 경매 최고가는 2021년 미국 텍사스 주 댈러스에서 열린 경매에서 42만1000달러(5억7000만 원)에 낙찰된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의 미서명 초판본인 것으로 알려져요.
2024-05-06 11:49:42
-
홍콩, 스스로 다시 일어서는 ‘오뚝이 소방선’ 도입
홍콩 소방당국이 바다 위에서 뒤집어져도 자체적인 힘으로 다시 일어서는 세계 최대 규모의 ‘오뚝이 소방선’을 도입해요. 소방선은 소방 시설을 갖추고 연안이나 항만에서 불 끄는 일을 하는 배를 말해요. 홍콩 일간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대만의 조선소에서 제작된 이 소방선은 길이 약 35∼40m, 무게 약 200t(톤)에 달해요. 홍콩 당국은 해당 소방선을 도입하기 위해 약 220억 원의 예산을 들였다고 밝히며 세계 최대 규모의 자체 복원 소방선이라고 소개했어요. 이 소방선은 물 위에서 선체(배의 몸체)가 완전히 고꾸라져도 6초 만에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게 특징이에요. 에어백(공기 주머니) 등을 이용해 배가 기울어지거나 뒤집혀도 무게 중심의 위치를 바꿔 즉시 자세를 복원하는 기술이 적용됐지요. 최근 공개된 영상에는 대만 수아오 항에서 진행한 테스트에서 바다 위에서 서서히 기울다 완전히 뒤집힌 거대한 소방선이 불과 6초 정도의 시간 만에 완전히 바로 서 원래 자세를 갖추는 모습이 담겼어요. 이날 테스트에서 전복 상황을 포함한 모든 검사가 순조롭게 이뤄졌다고 SCMP는 밝혔어요. 소방선은 여러 테스트를 거쳐 이르면 6월경 홍콩으로 인도(사물이나 권리 등을 넘겨줌)될 예정이에요. 홍콩 소방당국은 “새로운 소방선을 도입함으로써 홍콩 동부의 거친 바다에서 해상 수색과 구조 능력이 크게 강화될 것”이라고 기대했어요.
2024-04-28 13:18:25
-
고온·고압 환경 아닌데… 국내 연구진, 세계 최초로 대기압에서 다이아몬드 생성
국내 연구진이 세계 최초로 우리 주변 기압(대기의 압력)인 대기압(1기압)에서 다이아몬드를 만드는 데 성공했어요. 자연에서 다이아몬드는 땅속 아주 깊숙한 곳에서 탄소(C) 덩어리가 엄청난 열과 압력을 받아 탄생해요. 실험실에서 기계 장치로 인공(사람의 힘에 의한 가공) 다이아몬드를 만들 때에도 대기압의 5만∼6만 배에 달하는 높은 압력과 1300∼1600도에 육박하는 극도의 고온 환경이 필요하지요. 하지만 기초과학연구원(IBS) 로드니 루오프 연구단장 연구팀은 1기압과 1025도의 온도에서 다이아몬드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고 최근 밝혔어요. 앞서 연구팀은 온도와 압력을 빠르게 조절해 액체 금속 합금(성질이 다른 물질을 섞어 만든 금속)을 만드는 장치 ‘RSR-S’를 직접 제작했어요. 인공 다이아몬드는 압력과 온도 조건을 맞춘 용기 안에 메탄과 수소가스를 넣은 뒤 온도를 높여 기체에서 탄소를 분리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져요. 다이아몬드 구성 물질인 탄소가 바닥에 막을 형성하면서 겹겹이 쌓여 점점 다이아몬드가 커지는 원리지요. 연구팀은 RSR-S를 이용해 갈륨, 니켈, 철, 실리콘으로 구성된 액체 금속 합금을 만들어냈어요. 그리곤 1기압의 압력과 온도 1025도의 환경에서 액체 금속 합금 아래쪽 표면부터 탄소가 확산되는 것을 확인했어요. 즉, 다이아몬드를 성장시키는 데 성공한 것. 다이아몬드는 매우 단단하고 내화학성(물질이 화학적 물질이나 처리에 견디는 정도)이 우수한 탄소 물질로, 반도체나 전자기기 등 활용도가 매우 높아요. 하지만 이런 다이아몬드를 만들기가 상당히 까다롭다는 게 문제였지요. 이번 연구를 통해 다양한 산업에 활용될 수 있는 원천 기술(근원이 되는 기술)이 개발됐다는 평가가 나와요.
2024-04-25 12:59:36